이야기를 하기 전에 '멸망'이라는 단어를 떠올려보길 바란다. 당신은 '멸망'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두렵다. 무섭다. 끔찍하다.. 대부분이 그럴 것이다. 나 역시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만큼 받아들이기 무척 어려운 문제인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 인간은 이에서 벗어나고자 노력하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꺼다.
이미 예상했다시피 이 책은 '인류의 멸망'을 전제로 쓰여졌다. 거기에 더해 베르베르 특유의 독특한 시점, 즉 우리가 사는 세계가 아닌 외부세계를 배경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마지막 생존자가 인류 멸망의 위기를 극복하고 새로운 희망을 찾는다는 기존의 책들과 별로 다를 바 없는 이야기지만, 그 중에서도 이 책이 눈에 띄는 이유는 그 전개 과정이 '차이'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인류의 마지막 생존자인 두 남녀가 벌이는 '인류의 존재 가치'에 관한 논쟁은 '종족 보존의 본능'이라는 미명 하에 당연시 여겨지던 머릿 속 '생존의 사고'를 송두리째 흔들고 있다.
그들은 우리 인간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우리가 어떠한 존재인가를 생각하게 만든다. '선'과 '악'을 동시에 지닌, 또한 '이성적인 사고'를 할 수 있는 동시에 그 어떤 동물보다 '감성적인 사고'를 할 줄 아는 존재가 바로 우리 인간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우리 스스로가 불완전한 존재임을 깨닫게 된다.
하지만 더욱 중요한 사실이 있다. 그것은 우리가 불완전한 존재이기에 스스로 완전해지고자 노력하고 있고 그 결과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베르베르가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바로 이것이라고 생각한다.
인류는 생존해야 한다.
동시에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게 아니면 인류의 미래와 생존은 없을 것이다.
p.s)
인류 존망의 중대한 귀로에 서있음에도 불구하고 티격태격하며 싸우는 두 남녀의 모습은 이상하기보다는 자연스럽게만 느껴진다. 그런 점에서 인간의 모습을 (특히 감정적인 부분을) 잘 표현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 덕분에 책 속의 이질적이고 비현실적인 상황에 대해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고 그들의 대화에 집중할 수 있었다. 이 점 또한 이 책이 지닌 매력이라고 본다.
짧은 이야기 속에 '인간'을 표현하고자 노력한 베르베르의 모습이 보이지만 그러한 것들을 다 표현하기에는 책이 좀 작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아쉬움이 남는다. 하지만 이 책이 '희곡'으로 쓰여졌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충분히 잘 담아냈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