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비로운 슬기생활

영화 13층 줄거리 후기 - 2시간짜리 심즈 체험

문득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내가 사는 현실이 혹시 가상이 아닐까?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생활 시뮬레이션 게임 '심즈'처럼 알고 보면 나도 누군가의 심즈가 아닐까 싶은 그런 의심이 들 때 보기 좋은 영화가 있다. 굳이 귀찮게 게임을 해볼 필요 없이 딱 2시간만 투자해서 심즈 체험을 해보자.

 

영화 13층 줄거리 요약

영화의 주인공 '더글라스 홀(크레이그 비에코)'은 잘 나가는 컴퓨터 회사의 직원이다. 그와 절친한 회사의 오너 '퓰러(아르민 뮐러 슈탈)는 자신들이 개발한 시뮬레이션 게임에 접속했다가 뭔가 중요한 사실을 깨닫고 더글라스 홀에게 알리고자 편지를 남기는데, 현실로 돌아오자마자 누군가에 의해서 살해당하고 만다.

 

잠에서 깨어나보니 피 묻은 셔츠가 쓰레기통에서 발견되고, 갑작스럽게 퓰러가 죽었다는 소식에 혼란스러운 더글라스 홀. 심지어 사건을 맡은 형사는 그를 유력한 용의자로 보고 뒤쫓기 시작하는데, 뭐가 뭔지 도대체 알 수 없는 홀은 결국 직접 시뮬레이션 게임에 접속해서 숨겨진 진실을 알아보려고 한다.

 

영화 속 1937년 LA vs 1999년 LA

너무나 리얼한 시뮬레이션 세계에 놀라는 한편, 사건의 진상을 밝히려고 노력하는 시뮬레이션 게임 속의 또 다른 자아 '존 퍼거슨(클레이그 비에코)는 그 세계가 허구라는 사실을 깨달은 애쉬톤(빈센트 도노프리오)에게 죽음 당할 위협에 놓이게 된다.

 

알고 보니 더글라스 홀에게 전하려던 편지를 의심 많은 애쉬톤에게 맡기는 바람에 그 사단이 나고 만 것. 그러길래 중요한 편지는 직접 전해주던지 비밀금고를 이용해야지 이 양반아.. 아무튼 그 편지 내용을 본 애쉬톤은 자신이 가보지 않은 세상 먼 곳까지 가봄으로써 진실을 알아내고야 만 것이다.

 

동료의 도움으로 죽기 직전 다시 현실로 돌아온 더글라스 홀은 왠지 모를 기시감에 휩싸이고, 정체를 알 수 없는 퓰러의 딸까지 등장하면서 더욱 머리가 아파온다. 뭐가 가상이고 뭐가 현실인지 이젠 알 수 없는 지경에 이른 그는 마찬가지로 세상의 끝으로 향하는데.. 그곳에서 마주한 진실은 과연 무엇일까?

 

 

 

영화 13층 3분 감상평 (vs 매트릭스 시리즈)

비교해서 보면 더 재미있는 <13층> vs <매트릭스>시리즈

가상현실 얘기를 할 때 가장 먼저 떠오는 건 <매트릭스> 시리즈. 세계관도 워낙 출중하지만 그 안에서 벌어지는 액션 덕분에 수십년이 지금까지 회자될 정도로 아주 매력적인 작품! <매트릭스>가 처음 세상에 나온 게 1999년이었는데 우연찮게도 <13층>도 똑같다.

 

디테일은 다르지만 둘 다 비슷한 얘기를 하고 있는 셈인데, 세기 말에 나온 영화라 그런지 특유의 어둡고 철학적인 감성이 흘러넘친다. <매트릭스>가 로봇과의 대립 구도를 통해서 다이나믹함을 추구한다면, 영화 <13층>은 가상 인물 vs 현실 인물을 통해서 좀 더 고지식하게 인간의 의식을 탐구한다.

 

 

역시 감독이 유럽 출신답게 유럽 특유의 그 철학적인 감성이 묻어난다. 유럽 영화는 보통 복잡하고 머리 아플 때가 많아서 작정하고 볼 때 빼고는 별로 선호하지 않는데, 다행히 <13층>은 그 정도는 아니다. 배배 꼬는 거 별로 없이 그냥 흘러가는 대로 봐도 이해가 되는 수준.

 

대신 요즘 사람들이 보기에는 재미가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매트릭스 정도는 되어야 찾아볼까 말까 하는 마당에, 잘 알려진 할리우드 배우가 나오는 것도 아니고 포스터도 참.. 유러피안 스타일로 참 점잖게 뽑았다. 흥행보다는 메시지 전달에 더 신경을 많이 쓴 게 아닌가 싶은데 아무튼 좋은 영화임에도 모르는 사람이 너무 많다.

 

그 자체가 스포라는 <13층>포스터와 게임 <심즈>

최근에는 <인셉션>에 <인터스텔라>, 그리고 이제는 <테넷>으로 시간을 가지고 노는 시간 장인 우리 놀란 형 때문에, 더더욱 과거 SF 영화를 찾아볼 일이 없어지는 것 같아서 슬플 뿐이다. 물론 요즘 작품도 훌륭하지만, 특히 1990년대 영화들은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세기말 감성'이 있어서 또 다른 보는 재미가 있다.

 

영화 배경이 되는 1937년과 1999년의 LA에서 느낄 수 있는 향수를 생각해본다면, 시대극+SF+철학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취향 저격이 될만한 작품이다. 영화를 다 보고 나서 마치 심즈가 된 것 같은 기분에 하루 정도 스턴 먹을 수 있으니 가급적 주말에 보길 바란다.

 

- 개인 평점 : 4.0

- 왓챠 평균 : 3.7

 

+몇 가지 흥미로운 사실들

역시 스토리가 탄탄하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원작이 있었다. 1960년대 SF 소설인 대니얼 갤로이의 《시뮬라크론 3》를 원작이라고 하는데 책은 안 읽어봐서 원작과의 비교는 무리일 듯..

 

그리고 또 하나. 왜 제목을 '13층'이라고 지었을까 궁금했는데, 표면적인 이유로는 영화의 핵심 소재인 시뮬레이션 시스템이 설치된 장소(건물 층수)를 말하기도 하지만.. 좀 더 근본적으로 따지고 보면 13이라는 숫자가 서양에서는 예수의 최후의 만찬 때 참석한 인원수이자,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숫자라서 그렇게 지었다고 한다.

 

이게 감독이 직접 한 말인지 아니면 뇌피셜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영화 중간중간 엘레베이터의 '13층' 버튼을 보여주는 장면이 반복되었던 걸 보면, 무의식적으로 관객들에게 가짜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의구심, 공포를 심어주려고 한 걸 수도 있겠다 싶긴 하다. 해석은 원래 뇌피셜에서 나오는 거니까 각자 상상력을 발휘해보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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